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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경제학
[버림의 경제학] 정재윤 마케팅공화국 대표

경제적 관점에서의 ‘버린다는 것’, 이는 무소유(無所有)가 아니라 비소유(非所有)에 가깝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을 의미하지만, 비소유는 불필요한 것을 굳이 가지려 하지 않는 ‘효율성’에 기반한다.

신기술이나 멀티 기능이 중시되던 예전에 비해 최근엔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 인기다. 얼리 어댑터의 상대어인 슬로 어댑터의 부상(浮上)은 이러한 단순함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소비자에겐 다양하지만 불필요한 성능을 지닌 비싼 제품보다 간편하고 값싼 제품이 경쟁력 있다.

한편 ‘버림’과 연관된 대표적인 마케팅 기법으로는 ‘디마케팅(Demarketing)’을 꼽을 수 있다. 기업의 매출, 외형, 규모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수익성도 그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특히 불경기가 심화될수록 기업은 규모가 아니라 효율성에, 고객의 양이 아니라 질에 눈을 돌려야 하는데, 과감하게 고객을 버리거나 줄임으로써 오히려 수익성을 제고하는 디마케팅 발상은 ‘생존 기술’이기도 하다.

‘파레토의 법칙(Pareto’s Law)’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기업에 적용하면 회의시간의 20%에서 80%의 의사결정이 나오고, 20%의 고객이 80%의 매출에 기여하며, 20%의 상품이 전체 수익의 80%를 차지하는 경우 등이다.

VIP 서비스에 주력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불경기가 심화될수록 기업들은 고객의 양이 아닌 질에 관심을 갖는다.
역으로 하위 40%의 고객은 수익 창출은커녕 오히려 10%의 손실을 유발한다는 통계도 있다(고가 가구를 구입했다가 집들이 후 흠집을 내 반품하거나, 명품 속옷을 입을 만큼 입은 뒤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며 반품한 사례). 이 같은 경우라면 과감하게 군살(악성 고객)을 제거해야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 아니, 최소한 손해라도 막을 수 있다.

디마케팅이 악성 고객을 퇴출시켜 수익성을 높이는 경우에만 활용되는 건 아니다. 외부의 압력과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객을 버리거나 줄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프랑스 맥도널드가 ‘어린이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오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코카콜라가 학교 내에서의 판매 억제를 위한 지침을 내놓은 것은 이들이 어린이 비만을 조장한다는 세간의 비난을 의식한 자구책이다. 지금 당장은 이 때문에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만 그냥 방치했다간 더 큰 손실을 자초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방어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우호적 이미지를 각인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비단 고객 차원에서뿐 아니라 직원 고용, 상품 개발, 아이디어 수렴에서도 이런 비소유의 발상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업무 영역 가운데 비핵심적인 역량을 과감하게 외부에 위탁함으로써 전문성 강화와 비용 절감을 꾀하는 아웃소싱(outsourcing), 인터넷상의 누리꾼(네티즌)들을 활용해 상품 테스트를 실시하거나 신상품 개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크라우드소싱(crowdsourcing) 등도 기존 관행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효율성을 찾으려는 시도다.


[스타일을 완성하는 버림] 심정희 에스콰이어 패션에디터

컴퓨터 게임에 등급이 있는 것처럼 옷 입기에도 등급이 있다. 초급, 중급, 고급의 3단계다.

초급 단계에서는 ‘법칙 따르기’가 관건이다. 옷 입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법칙이 있는데, 남성 초급에는 ‘벨트 컬러와 구두 컬러를 맞출 것’ ‘넥타이의 뾰족한 끝 부분이 벨트 중앙 정도에 오게 맬 것’, 여성 초급에는 ‘키가 작다면 무늬가 너무 큰 옷을 피할 것’ ‘종아리가 굵다면 웨지힐을 피할 것’ 등의 체형별 규칙이 적용된다.

스타일의 고수들은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한다.
중급은 ‘파괴와 변칙’의 단계다. 조금 전까지 신처럼 떠받들어지던 규칙들이 이 단계에서 간단히 무시되고 파괴된다. 초급 단계를 넘어선 사람들은 그레이 슈트의 짝이 브라운 레이스업 슈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화이트 스니커즈를 선택하고, 우아한 정장에나 어울릴 법한 진주 목걸이를 수영복과 매치한다. 이 단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신의 감각을 드러내는 것. 그들은 규칙을 파괴해 남들과 다른 룩을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감각을 인정받고자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서면 고급 단계가 시작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화려하고 요란한 옷차림이나 변칙적인 기술엔 관심이 없다. 10개 아이템을 활용해 10만큼의 효과를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다. 일견 간단한 듯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멋이 나는 옷차림이야말로 그들이 추구하는 바다. 갖은 양념을 이용해 맛을 내려는 요리 초보와 달리 양념 사용을 최소화함으로써 각각의 식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살리려는 요리 명인처럼, 옷 입기의 고수들은 더하기로 100을 만드는 것이 아닌 빼기로 100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그래서 언뜻 보면 초급 단계의 사람보다 더 무감각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초급과 중급을 거쳐온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이자 스타일 아이콘인 케이트 모스가 “옷을 잘 입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외출하기 전 거울을 보면서 무엇을 더할까가 아닌 무엇을 뺄까를 고민한다”고 대답했다. 세계에서 가장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가 너무 반듯하게 잘린 머리 모양이 싫어서 스스로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자른다는 이야기, 예술적 스타일링 감각으로 정평이 나 있는 스타일리스트 그레이스 코딩턴이 늘 헐렁한 화이트셔츠에 블랙 팬츠 차림을 고집하는 것 등은 궁극의 세련미가 화려함이 아닌 뭔가 빈 듯한 ‘여백의 미’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20세기 패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시기로 여겨지는 1980년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촌스러웠던 시기로 꼽힌다. 패드를 넣어 부풀린 어깨, 커다란 금장 단추, 보라색이나 노란색 같은 채도 높은 컬러의 과도한 사용으로 특징지어지는 그 시기는 풍요로운 기운으로 넘쳐났지만, 2000년대를 살아가는 패션계 사람들 사이에서 80년대는 ‘졸부의 시대’로 기억된다.

최근 패션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자연주의 패션 또한 근본적인 목적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빼기의 미학’과 맞닿아 있다.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데 패션계도 동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패션은 귀리나 헴프 같은 오거닉 소재를 이용해 옷을 만들고 천연 꽃잎이나 해충 등에서 얻은 염료로 원단을 염색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옷들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디자인으로 완성되는데, 외양보다 정신적인 것, 새 것보다 오래된 것, 인위적인 아름다움보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와비-사비’ 정신(일본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수수함과 겸손함의 미덕을 최고로 친다. 극도로 기계화된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정신적 평온을 주는 개념으로 각광받으며 인테리어, 패션, 디자인 등 여러 분야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과 맞물리면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결국 모든 일이 그렇듯, 스타일의 최고 경지도 욕심을 버리고 기본에 충실하는 순간 펼쳐지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버림] 유태우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

현대인의 지나친 소유욕은 건강에도 해가 된다.

현대인이 행복을 위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기준이 되면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적다고 투정부리거나 상실감을 느낄 여지도 없다.

‘버림’은 그러한 ‘무’의 경지에 이르는 중간 단계라 할 수 있는데, 가지고 있는 무엇을 ‘버린다’는 의미보다 원래 기준이었던 ‘무’ 상태로 ‘돌아간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현대인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소유는 건강에도 해롭다.

한 예로, 건강의 가장 큰 적 가운데 하나가 스트레스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본래 체력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늘 말로는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소유할 것을 늘리기 위해 일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게다가 소유할 것이 늘면 그만큼 관리할 것도 많아진다. 다시 말해 일이 더 생기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과다하게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렇게 모은 것을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더한다.

그뿐인가. 우리가 먹는 음식도 건강을 위해 줄여야(버려야) 할 부분이다. 현대 한국인에게 과식은 온갖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배 나온 중년 남성이나 비만, 당뇨병, 심장병 환자의 급증이 그 증거다. 대표적 현대병인 암 역시 과잉이 원인이다. 이른바 항암 효과가 있다는 녹차, 상황버섯 등을 즐겨 먹으며 발암물질이 함유된 음식에 질겁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이러한 원인들은 많이 먹는 ‘해악’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요즘처럼 음식이 넘쳐나고 영양 과잉이 문제 되는 상황에서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니라 ‘덜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버리고, 비워내야 하는 것이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위를 만족시키는 식사가 아니라, 맛을 느끼고 입을 만족시키는 식습관을 들이자.

내가 제안한 ‘반식(半食) 다이어트’는 이런 식습관을 통해 살을 빼는 방법이다. 기존 식사량의 반을 버리고, 반만 먹는 것이다. 이때 20분 이상 식사를 하면 적게 먹어도 배가 덜 고프다. 또 아침을 꼭 먹으면 하루 전체 섭취량을 줄일 수 있으므로 세 끼는 반드시 챙겨먹도록 하자. 물은 하루 8잔 이상 마시는 게 도움이 된다.

사실 ‘무’의 생활이나 반식 다이어트 모두 내 개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몇 년 전부터 3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모두 버리거나 남에게 주는 등 생활 속 많은 일을 단순화했다. 또 반식 다이어트를 통해 섭취하는 음식량을 반으로 줄였다. 덕분에 스트레스가 줄었고, 몸무게는 15kg가량 빠졌다. 이처럼 버림은 건강을 위해 더없이 좋은 실천이다.

주간동아 2008년 2월 20일
Last update on 2008-02-20